담양 여행에서 대나무 숲과 정자를 둘러보았다면, 읍내 한복판에서 멀지 않은 남산리 언덕 아래의 용화사까지 걸음을 넓혀 볼 만하다. 태고종 사찰인 이 절은 담양 관광의 대표 풍경에 가려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절의 이력을 따라가 보면 담양 읍내 불교의 근대사와 한 승려의 평생이 겹쳐 있다.
백양사 포교당으로 시작된 절
용화사의 출발은 1934년으로 전해진다. 장성 백양사의 차학신 스님이 읍내에 포교당을 연 것이 효시라는 설명이다. 산중 사찰이 신도가 사는 읍내에 거점을 두고 포교하던 때의 일이다.
이 포교당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형편이 어려워지자 건물은 민가에 넘어갔다고 한다. 이야기가 달라지는 것은 이 대목이다. 담양 불교청년회와 신도회가 백양사 청류암에 머물던 묵담 큰스님께 "깊은 산중보다 가까운 읍내로 내려와 가르침을 달라"고 청했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절이 다시 섰다고 한다. 임야 6천 평과 대지 6백 평, 초가 2동을 사들여 남산리 106번지에 터를 잡고 '용화사'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것이다.
창건 연도는 하나가 아니다
이 절의 창건 연도는 자료마다 다르다. 군청 계열 자료는 묵담 스님이 담양 청년 불자들과 함께 1945년에 절을 세운 것으로 적고 있다. 반면 학술 자료는 묵담 성우(黙潭聲祐) 스님이 1950년 담양에 용화사를 세웠다고 쓰고, 같은 논문 초록에는 1952년이라는 서술도 나온다.
연도가 엇갈리는 이유를 단정하기는 어렵다. 포교당으로 시작된 때와 묵담 스님이 터를 잡아 지금의 용화사로 키운 때를 각각 '창건'으로 부르기 때문일 수 있다. 확실한 것은 지금의 용화사를 있게 한 중심 인물이 묵담 스님이라는 점이다.
묵담 대종사와 유물관
묵담 스님은 1896년에 태어나 근대기 조계종과 태고종의 종정을 지냈고, 불상 안에 경전과 복장물을 넣는 불복장(佛腹藏) 작법을 이어 중흥시킨 승려로 소개된다. 1952년에 그려진 불화 여러 점에는 그가 의식을 증명하는 역할을 맡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한다.
절 안의 묵담유물관은 이 이력을 보여 준다. 2004년 문을 열었고, 묵담 스님이 수집한 불교 전적과 불상, 용화사 창건기의 불사 관련 성보문화재가 보관돼 있다. 대표 소장품은 보물 제737호 『불조역대통재』다. 1472년(조선 성종 3년) 간행된 7권본으로, 석가여래의 탄생부터 중국 원나라 시기까지 학덕 높은 스님들의 전기를 연대순으로 엮은 책이며 전권을 빠짐없이 갖춘 유일한 판본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 전기의 목판 인쇄술과 왕실의 불교 신앙을 살필 수 있는 자료다.
학계에는 불화와 왕실 시주품, 번(幡)과 복장낭, 목판본 불서 연구가 보고돼 있고, 목판본만 73종 303책이라는 조사 결과도 있다.
초가 인법당에서 대웅보전까지
절의 모습은 초가를 고쳐 만든 인법당에서 시작했다. 2대 주지 덕봉지광 스님이 미륵전, 칠성각, 종각, 요사를 지어 사찰의 틀을 갖췄다.
3대 도월수진 스님은 1995년부터 천일기도를 올린 끝에 1997년 9월 18일 목조 대웅보전을 완공했다. 대웅보전은 48평 규모로, 석가모니불을 본존으로 모시고 문수·보현보살을 좌우에 두었다.
찾아가는 길
위치: 용화사 (전남 담양군 담양읍 남촌길 77)
지도 © Kakao
담양군 담양읍 남촌길 77(남산리 106번지)에 있어, 담양 관광 일정 중 읍내에 머무는 동안 잠시 들르기 좋다. 한국관광공사 안내에 따르면 이용시간은 09:00~18:00, 연중무휴이며 주차가 가능하고 입장료는 무료다. 묵담유물관 관람도 무료로 안내돼 있으나, 운영 시간은 방문 전에 확인하는 편이 안전하다.
사진=한국관광공사 대한민국 구석구석 / 참고=한국관광공사 대한민국 구석구석 '용화사(담양)', 담양군청 자료, 유경희 「담양 龍華寺 黙潭遺物館 소장 불화의 특징과 의미」(『남도문화연구』 43호,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