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 곳곳에서 '천년담양'이라는 문구를 만날 수 있다. 이 말은 담양이라는 이름이 생긴 지 천 년이 되던 2018년에 담양군이 내건 이름이다. 천 년을 세는 출발점은 고려 현종 9년, 서기 1018년이다.

담양을 대표하는 대숲 관광지 죽녹원의 입구. 사진=한국관광공사
담양을 대표하는 대숲 관광지 죽녹원의 입구. 사진=한국관광공사

천년담양은 어떻게 시작됐나

담양군은 2018년을 앞두고 2016년에 담양천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를 꾸렸다. 군민 설문조사와 위원회 회의를 거쳐 기본계획을 세웠고, 최종적으로 35개 사업을 골랐다. 2017년 10월 군의회 설명회 때는 32개 사업을 추진 중이라고 보고했으니, 준비 과정에서 사업이 더 늘어난 셈이다.

사업에는 기념 문장과 슬로건을 만드는 일, 미래의 후손에게 보내는 메시지 받기, 미래천년 담양장학금 조성, 군민 1000인 합창페스티벌 같은 것이 들어 있었다. 군은 2018년 새해 첫날 군민의 이름으로 '담양천년선언문'을 선포했다. 이 선언문은 이후 군정이 나아갈 방향을 가리키는 가치로 쓰였다고 당시 군수가 밝혔다.

슬로건은 2017년 7월에 정해졌다. 일반용 '천년담양, 자연이 사람을 품다', 정책 홍보용 '천년담양, 생태와 인문학으로 디자인하다', 기념사업 이후에 쓸 '생태와 인문학으로 피어나는 담양' 세 가지였다. 이 가운데 두 번째가 천년담양을 대표하는 문구로 자리 잡았다.

천년담양, 생태와 인문학으로 디자인하다

같은 2018년에는 호남권 지자체가 '전라도 정도 1000년'도 내걸었다. 다만 이는 광역 단위의 별개 사업이고, 천년담양은 담양이라는 지명 자체를 기준으로 한 기념사업이다.

왜 하필 1018년인가

담양의 이름은 한 번에 정해진 것이 아니다. 지금의 담양읍 일대는 백제 때 추자혜군(秋子兮郡)이라 불렸다. 통일신라 경덕왕 16년인 757년에 한자 지명을 고치면서 추성군(秋成郡)이 됐고, 이때 군의 중심은 지금의 무정면 봉안리 일대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로 넘어와 성종 14년인 995년에 담주(潭州)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때 도단련사라는 관직을 두었다. 그리고 현종 9년인 1018년에 담주의 도단련사 자리를 없애고 담양군으로 고쳤다. 담양군이 '지명 천 년'의 기준으로 삼은 해가 바로 이 1018년이다. 다만 자료에 따라 담주로 고친 때를 995년으로 적고 담양으로 바뀐 때를 따로 밝히지 않은 경우도 있어, 연도 표기는 책마다 조금씩 다르다.

담양(潭陽)이라는 글자에는 풀이가 따라붙는다. 담(潭)은 맑은 물이 고인 못을, 양(陽)은 따뜻한 햇볕을 뜻한다. 노령산맥에서 흘러내린 물이 곳곳에 못을 이루고, 남쪽이라 볕이 따뜻한 땅의 모습이 이름에 담겼다고 보는 해석이 널리 소개된다.

천 년 동안 달라진 담양의 이름과 지위

고려 명종 2년인 1172년에 감무가 파견되면서 담양은 주변 고을에 딸린 곳에서 벗어나 독립된 주현이 됐다. 조선에 들어서는 지위가 여러 번 바뀌었다.

  • 1395년(태조 4): 국사 조구의 본향이라 하여 군으로 승격
  • 1399년(정종 1): 정종비 김씨의 외향이라 하여 부로 승격
  • 1413년(태종 13): 담양도호부로 편제
  • 1728년(영조 4): 반역을 꾀한 인물의 출생지라 하여 현으로 강등
  • 1738년: 다시 승격
  • 1762년: 또다시 같은 이유로 현으로 강등
  • 1772년: 담양도호부로 복귀
  • 1895년: 관제개혁으로 군이 되어 남원부에 속함

그 사이 이웃한 창평은 백제 때 굴지현이었고 신라에서 기양현으로 이름을 바꿨다. 창평현은 1895년 군이 됐다가 1914년 폐지됐고, 이때 담양에 합쳐진 것으로 정리된다. 지금의 담양군은 이런 오랜 고을 변천의 끝에 서 있다.

지금도 남은 천 년의 흔적

고려 때의 모습을 짐작하게 하는 유산이 담양읍 안에 남아 있다. 담양읍 객사리의 석당간은 보물 제505호로, 높이 15m의 화강석 깃대다. 팔각 돌기둥 세 개를 이어 올리고 이음새를 쇠고리로 붙들었다. 곁에 선 비석에는 큰바람에 꺾여 나무로 대신 세웠다는 기록이 새겨져 있는데, 헌종 5년인 1839년의 일이다. 당간 앞에 선 석탑이 고려 때 것이어서 당간도 같은 시기로 보고 있다.

담양읍에는 보물 제506호로 지정된 오층석탑도 있다. 해설에 따르면 기단이 다른 석탑보다 유난히 낮고,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과 비슷한 모습이라 백제계 석탑의 양식을 본뜬 것으로 보인다.

문장 속에 담은 담양

군은 기념사업의 하나로 '천년기' 문장도 새로 만들었다. 대나무와 산천초목은 물과 볕이 넉넉한 생태도시의 모습을, 정자와 책은 가사문학을 꽃피운 옛 풍류와 인문학 교육 도시라는 오늘의 모습을 나타낸다. 문장 한쪽에는 'SINCE 1018'이라는 문구를 넣어 지명의 역사를 밝혔다. 군은 이런 문장 형태의 천년기를 전국 지자체 가운데 처음 만든 사례로 소개했다.

12개 읍면에도 저마다 문장을 만들어 주었다. 읍면별 문장은 전국에서 처음이라고 알려졌다. 담양읍 문장에는 죽녹원과 관방제림, 고려 때 석당간, 도시재생으로 되살린 담빛예술창고가 들어갔다. 제작 과정에서 군민 보고회를 다섯 번 열고 추진위원회와 전문가 자문을 받았다. 완성된 문장은 동판으로 설치하고 읍면 깃발로 만들어 축제 입장식 등에 쓰기로 했다.

기념사업의 마지막, 천년의 문

35개 사업의 마지막은 상징 조형물 '천년의 문'이었다. 2022년 4월 27일 담양천년광장에서 준공 기념식이 열렸고, 지역 기관단체장과 초청 인사 60여 명이 참석했다.

천년의 문은 너비 8m, 높이 6.25m의 문 모양 화강석 조형물이다. 사업비는 4억 원이 들었다. 조형물에는 천년담양 문장과 12개 읍면 문장, 담양천년선언문, 그리고 '생태와 인문학으로 디자인하다'라는 슬로건이 새겨졌다. 같은 날 광장에는 50년 뒤에 열 타임캡슐도 묻었다. 군민의 염원을 담은 메시지와 상징물이 들어 있어, 개봉 시점은 2070년대 초가 된다.

담양천년광장, 찾아가는 길

  • 천년의 문이 선 담양천년광장은 담양군농업기술센터 옆, 한국대나무박물관 가까이에 있다고 보도됐다.
  • 아래 지도는 가까운 한국대나무박물관(담양읍 죽향문화로 35)을 기준점으로 표시했다. 광장의 정확한 위치와 주차 여건은 현장에서 안내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 죽녹원과 관방제림이 가까워, 담양읍 나들이 코스에 함께 넣기 좋다.

위치: 한국대나무박물관 (전남 담양군 담양읍 죽향문화로 35)

담양 여행을 계획한다면 대나무 숲과 정자만 보지 말고, 이 땅이 천 년 동안 이름과 지위를 바꿔 온 이야기를 함께 떠올려 보길 권한다. '담양의 멋, 담양의 맛' 연재의 앞선 글은 「담양 여행 가볼 만한 절, 용화사의 두 갈래 창건 이야기」다.

사진=한국관광공사 대한민국 구석구석 / 참고=국제뉴스 「담양군, 2018 담양 지명천년 기념사업 '슬로건·문장(紋章)' 확정」(2017.7.23), 담양인신문 「'담양 지명천년 기념사업' 군의회 설명회」(2017.10.18)·「특집/제43대 최형식 담양군수 취임 인터뷰」(2018.7.11), 프레시안 「담양군, 지명 천년의 역사와 문화가 담긴 '담양 문장 디자인 프로젝트'」(2018.11.30), 담양뉴스 「'천년의 문' 담양의 중심에 우뚝 서」(2022.5.2), 데일리한국 「담양군, 천년담양 상징조형물 '천년의 문' 준공 기념식 개최」(2022.4.28), 아주경제 「예향 문향 의향 대나무숲 담양을 거닐다(서문)」(2022),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담양 연혁 및 '담양 객사리 석당간' 항목